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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을 만드는 연금술사 이명순







행복을 만드는 연금술사 이명순














그녀는 스스로에게 맹약하듯 말했다. “웨딩드레스를 만들면서 그걸 ‘잘 살아라, 행복해라’ 쓰다듬는 게 내 운명이에요.” 하고 싶은 일이 많지만 인생은 계획했던 것보다 항상 더 단순하다. 이명순은 웨딩드레스 디자이너다. 그리고 그녀는 인생의 많은 시간을 작업실에서 신부들을 위해 드레스 스케치를 하면서 보낸다.


그녀의 작업실은 모든 것이 가로로 만들어진 건물 청담동 가로 빌딩의 꼭대기에 숨어 있었다. 어딘지 이국적인 풍경과 햇볕이 밝은 그 작업실에서 그녀는 디자인을 하고 있었다. “다들 원해서 디자이너가 되잖아요. 나는 지금까지 제멋에 겨워 디자인을 했다고 할까. 오빠가 일간지 기자였는데, 여자도 일이 있어야 한다고. 드레스, 깨끗하고 좋으니 드레스 숍을 해보면 어떻겠느냐고요. 그렇게 시작했어요. 처음 청담동에 부티크를 열었죠. 그런데 20년 동안 웨딩드레스 디자이너로 살다 보니 지금은 선배 디자이너로서 잘 살아야겠다는 부담감이 커지는 거예요.” 나이 쉰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그녀의 삶은 안전하고 편안한 길을 걷고 있는 것 같다. 지난 9월 24일 까르띠에 부띠끄 오픈을 기념한 패션쇼에 등장한 드레스도, 그녀도 컬렉션만 스무 번째의 여유로움이 보였다. 일찌감치 자기 이름을 건 부티크도 열고. 결혼도 하고. 네 살 터울의 딸 둘을 낳아 기르고, 결혼 10년 만에 집과 사옥 건물을 장만하는 기특한 삶이었다. 그런 그녀에게도 고통스러운 순간이 있었다고 했다. “팔 년 전인가. 마흔에 이렇게 인생이 저물어가는구나. 여기서 결정을 하지 않으면 늦어버리겠구나. 이런 절박함 같은 걸 많이 느꼈어요. 친구들 만나면 이젠 끝나나봐, 이젠 다 결정돼버렸어, 크게 바뀔 게 없구나, 인생이. 그런 얘기 많이 했었어요. 나한테 고통이나 시련이 없었던 건 아닌데 나는 대부분 그걸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것 같아요. 넉넉한 집에서 태어나 어려움 없이 자라다가 갑자기 고통을 겪게되었죠.

나의 한 가지 특징은 고통스러운 일과 정면대결하는 거예요. 현상을 인정하고 고통을 더는 거지요. 한창 부티크가 잘될 때 2000년인가. 건물 주인으로부터 3개월 안에 나가달라는 통보를 받았어요. 그때부터 이 가로 빌딩을 짓고 이전하는 지난 6년 동안이 힘들었죠. 건강도 좋지 않았고. 하나하나 해결하기 시작했어요. 부티크가 이전할 임시 공간을 마련하고, 내가 모든 상담을 하다시피 했지요. 개인적인 삶은 포기했죠. 그러면서 새로운 사옥의 자리를 물색해 건물을 짓는 디자인도 직접 했고요. 아침부터 밤까지 쉬지 않고 일에 매달리다 보니 밤이면 머리가 띵하면서 내가 나한테 놀란 거야. 이렇게 일을 좋아했구나. 그럴수록 컬렉션도 쉬지 않고 열었는데 새로운 도전을 하면서 말할 수 없는 환희를 느꼈었죠. 가장 좋았던 컬렉션은 어려웠던 시기에 연 2000년 프라자 호텔 컬렉션이에요. 그때 선배 노비아 한 선생님이 내게 귓속말로 ‘당신이 최고야’라고 말해주었지요.”
그의 목소리는 조용하고 힘이 있다. 조용하면서 많은 게 보인다. 직선으로 설명하고 지나친 과장이 없는 직관적인 얼굴. 가슴속 침전물을 가만히 닦아줄 것 같은 친절한 손바닥.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이고 위로해주는 창조자의 권능을 지닌 눈. 그녀는 항상 장점을 발견한다.

(왼쪽) 실크 저지 소재로 몸에 감기는 듯  자연스럽게 흐르는 우아한 느낌의 드레스.
모던하면서 귀족적인 라인이 돋보인다.허리선의 앤티크한 비즈 장식이 돋보이는 우아한 로 웨이스트
(오른쪽) 코발트블루의 강한 색감과 저지 소재가 어우러져 감각적이다. 부드러운 드레이프로 시크하지만 여성스러움이 함께 느껴지는 칵테일 드레스.

“나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해요. 의식도 많이 하고. 난 서로 상반된 것들을 많이 갖고 있고, 그 차이의 균형을 잡으려고 애쓰는 게 나한테는 힘이 된 것 같아요. 나를 활달하게 보는 사람들이 많은데, 나는 애쓰는 거예요. 난 모범생으로 살아왔던 시절이 너무 길고 그런 것들이 정해준 규격대로 나를 맞추려고 하는데, 그렇게 살아서는 좋은 디자이너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해요. 결혼 생활, 아이를 낳고 인간을 해석하는 시각이 많이 넓어졌지요. 디자이너로서 고객을 그리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데 저는 좋은 점을 먼저 봅니다. 나쁜 점은 보지 않고 말하지 않아요. 좋은 것들만 보고 말하기에도 세상은 너무 빨리 돌아가니까.” 가로 빌딩에서 거리로 나와 가로수 길로 갔다. 밤은 검은 대리석처럼 두터워져 있었다. 주인이 명품 패션 브랜드 MD라는 그 레스토랑에는 평범하지 않은 사람들로 넘쳐났다.

“이런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고, 차를 마시고 난 또 누굴 보면서 저 사람에게 어떤 드레스를 입히면 좋을까, 그런 걸 생각해요. 사람들을 보고 드레스를 디자인하는 거예요.” 빛나는 촛불 아래 그녀는 세련된, 우아한, 성공한 여성이 투영된 재클린 케네디처럼 말하기 시작했다.
“1mm의 차이로 명품을 만든다는 말이 있죠? 저는 심플한 라인이지만 앞과 뒤 라인을 똑같이 자르지 않아요. 허리선을 내리든지 뒤 라인을 올리든지. 네크라인은 직선을 싫어해요. 여성스럽고 우아한 곡선, 브이넥도 곡선을 닮도록 섬세하게 만듭니다. 드레이퍼리 디자인을 담은 시폰 실크 드레스를 사랑해요. 스커트 폭은 일반 디자인보다 3배로 잡죠. 셔링을 1/3로 늘이고 웅장하게. 물론 원단도 많이 들고 정성도 세 배지만 옷에 감정을 넣어 그 속에서 행복을 찾아요. ‘이 옷을 입는 사람, 잘 살아라’ 하면서 쓰다듬기도 합니다. 제 옷은 그래서 달라요.”



1, 4 지난 9월 24일 까르띠에 부띠끄에서 열린 주얼리 쇼. 디자이너 이명순은 ‘앵드 미스터리어스 컬렉션-창조적이고 빛나는 인도에게 찬사를 보내는’에서 영감을 받아 신선하면서 독특한 까르띠에의 개성과 잘 어우러진 드레스들을 선보였다. 
2 촬영 현장에서 모델 피팅 중인 디자이너 이명순. 
3 델리스 드 까르띠에 티아라와 목걸이. 목걸이는 화이트 골드, 다이아몬드 2.6캐럿, 루비, 핑크 쿼츠, 다크 핑크 투르말린, 옐로 베릴, 만다린 가넷, 핑크 투르말린 원석을 사용했다. 움직이는 펜던트. 티아라 역시 여성스러우면서 부드러운 분위기를 선사한다. 까르띠에. 
5 유럽 여행에서 직접 구입한 빈티지 모자. 그녀가 아끼는 소장품이다. 드레스와 잘 어울리면 개인 소장품을 신부에게 매치해주기도 한다. 
6 컬렉션 준비는 보통 3~6개월 전부터 시작된다. 쇼에 선보일 의상을 직접 채색하고 원단을 하나하나 미리 붙여 매치해본다. 
7 여성스럽고 우아한 의상에 심플한 액세서리로 고급스러움을 담아내는 재클린 케네디 사진집. 그녀의 패션을 통해 디자이너 이명순이 추구하는 세련된 드레스 디자인의 힌트를 얻곤 한다.


작년 6월 론칭한 그녀의 세컨드 라인 ‘리휴 클로짓REE HUE CLOSET’은 약혼식, 파티, 피로연에 입을 수 있는 드레스와 양장의 맞춤, 판매 & 대여 브랜드. 옷이 많이 쌓여 있는 곳에서 멋진 옷을 골라낼 때 짜릿함을 느낀다는 타고난 감각을 가진 디자이너 이명순의 리휴 클로짓은 가로빌딩 4층 그녀의 동생 이정순이 운영하는 주얼리 부티크 ‘이씨 자이크’와 함께 있다.
“오는 11월 19일은 ‘가로 데이’예요. 가로 빌딩의 식구들 이명순 웨딩드레스, 리휴 클로짓, 이씨자이크, 가구점 플렉스폼, K&갤러리, 레젤 스튜디오가 모여서 VIP 고객, 지인과 함께 사진전 겸 파티를 엽니다. 요즘은 여행을 자주 못 가니까 내 방에서 잡지나 컬렉션 DVD를 보거나 그리고 파티 등에서 영감을 얻지요. 삶은 알 수 없는 거고, 그게 인간을 불안하게 만들지만, 이런 순간이 인간에게 살 만한 이유를 준다고 생각해요.” 가장 친한 친구를 궁금해하자 그녀는 잠깐 주저했다. 단 한 명의 친구를 생각할 기회가 없었던 것처럼. “꼭 한 명이어야 해요? 두 명 있어요. 제 딸들. 특히 둘째 김수진에게 제 브랜드를 이어가게 하고 싶어요. 감각 있는 그 애가 하고 싶어 하니까.” 그녀에게 꿈의 드레스는 영화 <마이 페어 레이디>의 오드리 헵번이 입었던 드레스라고 했다. 심플한 그녀의 스타일과 다르지만 그녀가 추구하는 고급스럽고 우아하며 귀족적인 왕실 웨딩이 담겨 있는 로맨틱한 옷이라고. 미래의 디자이너 김수진에게 감사하는 마음과 디자인의 자유로움을 물려주고 싶다고도 했다. 많은 사람이 머물고 있는 이 활기찬 가로수 길에서 “잘 살아라 행복해라”고 말하며 드레스를 쓰다듬는 디자이너 이명순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환상인지, 어딘지 포위된 듯 잡아당기는 듯 내 눈에는 디자이너 이명순의 모습만이 밝게 빛나고 있었다. 

(왼쪽) 투 톤 느낌의 와인 빛 컬러, 고급스럽고 부드러운 시폰 실크 소재 칵테일 드레스. 풍성한 오버사이즈 스커트로 감각적인 룩을 선사한다. 귀고리 앵드 미스터리어스 컬렉션 by 까르띠에.
(오른쪽) 실크 저지 소재로 자연스럽게 흐르는 우아한 느낌의 웨딩드레스. 상체에 섬세한 드레이프와 깊게 파인 뒷모습이 세련된 여신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튤 소재의 엠파이어 스타일. 시스루 소매가 우아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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