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반이 넘는 약국들에 적게는 200만 원 이상의 먹지 못하는 약이 쌓여 있고, 일부 약국에서는 1000만 원 이상의 불량 약들이 적체돼 있다.
뿐만 아니라 3일 식약청에 따르면, 동아제약·유한양행 등 주요제약사 10곳에서 2004년 폐기 처리한 의약품 규모만도 912톤에 달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일부 제약회사가 대한약사회의 건의를 받아들여 재고 의약품을 반품 처리해 줌에 따라, 의약품 폐기 처분 규모가 크게 늘어났다.
최근 이 같은 불용약(쓸모없는 의약품)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면서 폐기 과정 중 약물이 환경호르몬으로 인한 생태계 교란, 항생제 남용에 따른 슈퍼 박테리아의 출현 등으로 새로운 환경 문제의 원인이 되는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 하천에서 약 녹아 독극물?=문제는 폐의약품이 관리의 사각지대에 놓여 일반폐기물, 음식물쓰레기 등과 함께 배출돼 변기나 하수구를 통해 버려질 가능성이 많다는 것.
국내 하수처리장의 응집 및 여과 공정은 잔류 의약물질의 제거에 기여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하수처리장에 비해 고도처리를 필요로 하는 정수장에서조차 잔류 의약물질의 대부분이 걸러지지 않는다는 이 분야 전문가들의 지적을 감안하면, 국민들이 마시는 물의 오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시민환경연구소 이승민 연구원은 “폐의약품이 음식물쓰레기에 섞여 배출된 후 사료로 만들어질 경우, 가축의 섭취를 통해 약품 성분이 그대로 축산물로 축적돼 국민의 건강을 위협하게 되는 문제가 있다”고 우려한다.
이와 관련해 이 사안은 시민단체와 전문가들에 의해 오래 동안 지적되어 왔지만,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실태 파악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 병협 “안전불감증으로 처리 소홀”=지금까지 주사기나 적출물 등의 감염성 폐기물에 대해서는 폐기물 관리법에 의해 관리가 이뤄졌지만, 폐의약품에 대해서는 그 위험성을 전혀 인식하지 못한 채 처리에 대해 소홀히 여겨왔던 것은 사실이다.
대한병원협회 정동선 사무총장은 “국가는 물론 의약품을 다루는 기관, 국민들까지 모두 안전 불감증으로 인해 제조(수입)업자의 회수·반품 처리 이외에는 의약품의 처리에 대해 모두 소홀히 여겨왔다”고 지적했다.
이에 정 사무총장은 “우선 불용재고약 발생 원인을 파악하고 그에 따른 처리의 문제점을 분석해 환경 문제로 이어지는 것을 차단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언급했다.
◇ 의약품쓰레기 어떻게 처리하나=현재 식약청의 폐기약품 회수·폐기 처리 지침에 적용 대상 의약품을 확대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기존 지침에 적용대상 의약품을 ‘안정성·유효성에 문제가 있거나 품질이 불량한 의약품 등’으로 제한하고 있어 ‘파손 및 의약품 사용 후 잔량’에 대해서도 회수·폐기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어 이에 대한 지침의 확대 개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뿐만 아니라 의약품 생산 시 제약회사들은 원가를 절감하기 위해 다량포장을 하고 있는데, 이는 많은 양으로 가정이나 요양기관에서 사용 후 잔량이 발생하게 된다.
특히 마약의 경우 앰플 당 함량 보다 적게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 불용 재고약의 주원인이 된다.
대한약사회 신현창 사무총장은 “이를 위해 제약회사 차원의 노력이 필요하다”며 “ 연령 및 체중 등 환자의 특성을 감안, 포장단위를 다양화해 적정한 단위량을 선택할 수 있게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폐의약품 처리 방안으로 서울대학교 약학대학 권경희 교수는 “희귀의약품이나 응급의약품 등 특정의약품에 관해서는 정부 차원의 관리가 필요하다”며 “약의 반감기가 길어 폐기된 이후에도 인체에 치명적 영향을 주거나 환경오염을 일으킬 수 있는 의약품에 대해서 별도로 관리·처리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