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같은 병원, 바 같은 사무실 인기… “고급 분위기로 이미지와 친숙함을 선사” 인테리어 업계도 덩달아 성장… 연 6조원 시장 놓고 LGㆍ한샘 같은 대기업도 총력 쏟아
‘병원’이라고 하면 소독약 냄새가 폴폴 풍기는 싸늘한 분위기를 연상하시는지? ‘사무실’ 하면 정직한 모양새의 직사각형 가구가 빼곡히 들어선 공간을 떠올리시는지? 그렇다면 당신의 생각은 아직까지 1980년대에 머물러 있는지도 모른다. 카페 같은 피부과, 호텔 같은 치과, 고급 바(bar) 같은 사무실이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를 잡았으니 말이다.
병원 같은 병원은 인기 없어
인테리어에 많은 공을 들이고 있는 곳 중 대표적인 장소는 병원이다. 이제 병원을 병원 같이 꾸미던 시대는 지났다. 틀에 박힌 병원은 고객으로부터 외면 당하고 있다. 이런 변화는 여성이 많이 찾았던 피부과나 성형외과에서 시작해 치과, 산부인과, 안과, 내과, 한의원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는 추세다. 심지어 병원을 선택하는 기준으로 멋진 인테리어를 꼽는 사람까지 있을 정도다. 지난 6월 실내 인테리어가 뛰어난 서울 압구정동의 산부인과에서 아이를 출산한 유사빈(27)씨는 “의사의 실력도 실력이지만 아무래도 편안하고 세련된 병원 분위기에 호감을 느낀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요즘 인기 있는 병원은 타일이나 파벽돌 등의 마감재를 강조하고 고급스러운 패브릭(천을 이용한 소재)과 조명, 가구를 이용해서 트렌디하게 꾸민 병원이다. 한마디로 ‘병원 같지 않은 병원’이 고객을 끌고 있는 것이다. 이런 ‘병원 같지 않은 병원’은 동네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부천의 ‘김시환 이비인후과’는 입구를 주물문으로 장식하고 안내 데스크를 내추럴 컬러의 타일로 마감했다. 이 병원은 환자 대기실을 올리브 그린 컬러로 장식해 아늑하고 세련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병원 측은 “안정적이고 산뜻한 분위기가 보다 많은 고객을 유인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말했다. 병원을 시공한 포룸의 최승희 사장은 “병원은 고객의 편의와 라이프스타일은 물론 수익적인 면도 뒷받침돼야 하기 때문에 복합적인 사항이 요구되는 곳”이라며 “여성이 많이 찾는 병원일수록 인테리어의 중요성이 특히 커진다”고 말했다.
딱딱한 사무실은 외면 당해
‘공간’이 미치는 영향은 제품과 서비스를 판매하는 곳은 물론 노동력을 관리하는 곳으로까지 확장되고 있다. 특히 글로벌 기업의 경우 사무실 인테리어를 위해 들이는 공이 대단하다. 이러한 기업의 인테리어를 잇달아 맡아 주목받고 있는 ‘다원디자인’의 조규화 사장은 “전반적으로 오픈된 공간을 지향하며 효율성과 생산성을 강조한 레이아웃을 추구하는 것이 최근 사무실 디자인의 트렌드”라고 말했다. 그는 “여기에 직원의 복지를 고려해 가구 및 기타 시설을 고급화하는 것이 최신 경향”이라고 말했다. 최근의 또 다른 추세는 사무실에 독특한 개성을 부여해서 하나의 이야기가 있는 공간으로 만드는 것. 딱딱한 이미지가 떠오르는 변호사 사무실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다. 고민이나 걱정거리를 지닌 이들이 드나드는 곳인 만큼 부드럽고 안정적인 느낌을 주는 데에 신경을 써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변화는 상업공간도 마찬가지다. 스타벅스의 성공 뒤엔 시원스러운 통유리창이나 은은한 조명, 카키와 브라운 톤의 편안한 인테리어가 한몫 했다. 커피 한잔을 마시더라도 가격이나 맛 못지않게 ‘이미지’를 중요하게 여기는 세상이 된 것이다. “전엔 프레젠테이션 등을 통해 개조 공사의 필요성에 대해 구구절절 설명해야 했어요. 그런데 요즘엔 고객이 먼저 이렇게 하자 저렇게 하자는 요구를 해옵니다. 사정만 허락한다면 개조 비용에 투자를 아끼지 않으려는 분도 많습니다.” 포룸 최승희 사장의 말이다.
연 매출 600억원 규모로 성장한 곳도
다양한 공간에서 인테리어의 비중이 높아지다 보니 영세한 업체들이 아파트나 상가 인테리어를 전담하던 방식은 옛말이 되었다. 보다 체계적인 견적과 시공을 요구하는 소비자의 눈높이와 한층 너그러워진 지갑을 겨냥해 다양한 인테리어 업체가 등장한 것이다. 이들은 대부분 전문 디자이너를 주축으로 설비업자들이 팀을 구성해 하나의 업체를 만들어 사업을 꾸리는 형태를 취한다. 한성아이디, 미하우스, 포룸 같은 업체가 그 예다. 이들 업체는 각각의 특징이 담긴 디자인 포트폴리오를 고객에게 제공하고 있다. 고객은 스스로의 입맛에 맞는 스타일을 찾아 개인의 희망사항을 꼼꼼하게 의뢰할 수 있다.
이들 중엔 어지간한 중견기업 수준으로 규모를 끌어올린 업체도 있다. 1995년 설립해 10여년간 100여곳이 넘는 외국계 기업의 사무실을 디자인한 것으로 유명한 ‘다원 디자인’의 경우가 대표적. 이 회사는 연 매출이 600억원에 이르는 튼실한 기업으로 성장했다. 커다란 휴대전화 모양을 하고 있는 모토로라 코리아의 카운터, 도시 컨셉트로 꾸민 BAT 코리아의 사무실이 바로 다원 디자인의 작품이다. 조규화 사장은 “고객사가 가지고 있는 이미지를 최대한 끌어올려주는 동시에, 상업예술이니만큼 트렌드를 적절히 반영하면서 고객의 요구를 반영해주는 데 주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가구가 아니라 공간을 판다
현재 우리나라 인테리어 개조 산업규모는 연간 6조억원대. 실내건축공사업협의회는 우리나라 인테리어 시장에 대해 “2003년 5조5654억원 규모에서 2005년 6조3797억원 규모로 8.1% 성장세를 보였다”고 말했다. 협회는 “특히 사무공간 등 업무시설의 경우엔 매년 15.4% 이상의 급증세를 보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인테리어 산업이 신장세를 보이면서 각종 부자재는 물론 가구 소품 가전 패브릭에 이르기까지 종합적으로 성장하게 되자 각종 벤처기업이나 인테리어, 가구업체의 진출 역시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기업은 LG화학의 종합 인테리어 브랜드인 LG 데코빌. 1998년부터 전국 130여개의 지점을 운영하고 있는 이 회사는 최근 들어 직영점의 비율을 높여가고 있다. 또한 상업공간에 대한 개조 사업을 확대할 계획을 갖고 있다.
이러한 기업의 장점은 디자인 뱅크를 보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LG화학 홍보실 허관성 대리는 “우수 시공 사례에 대한 디자인 데이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평형은 물론 가족 구성원과 라이프스타일을 고려한 최적의 견적을 뽑아낼 수 있는 것이 최대의 장점”이라고 말했다. 또 공사 후에 철저한 AS를 받을 수 있다는 점도 장점으로 꼽힌다. 가구업체로 유명한 한샘인테리어는 “단순히 가구만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적인 공간의 컨셉트를 제안해 준다”는 것을 무기로 소비자에 접근하고 있다. 홍보실의 김동성 계장은 “각 매장 코디네이터들이 유행 컬러를 제안하고 가구의 배치나 어울림에 대해서 컨설팅해 주기 때문에 고객이 이를 바탕으로 필요한 가구와 소품을 구입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전체적인 집안 분위기를 같은 느낌의 ‘한샘 스타일’로 바꿀 수 있는 것이다. 이외에 일룸이나 리바트 등 기존의 가구업체도 사업 범위를 이 같은 방향으로 점차 확대하는 추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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